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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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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lalaland opened this issue Mar 19, 2018 ·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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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lalaland opened this issue Mar 19, 2018 ·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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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lalaland commented Mar 19, 2018

내 ‘인생의 책’ 1호는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다. 이 책은 내 마음속에서 호오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곳에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문자 그대로 인생이 바뀌었다. 단단한 지면이라고 믿었던 발판에서 미끄러져 어둡고 스산한 세계로 떨어졌고, 영혼의 어느 부분은 지금도 그 진창에서 허우적거린다.

군복무 시절 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때면 가장 두껍고 지루해 보이는 책을 들고 부대에 돌아갔다. 다음 휴가 때까지 읽을거리가 떨어지면 안되니까. 그렇게 도스토옙스키를 접했는데,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 먼저였고 다음이 이 책이었다.

두 작품 중 <악령>이, 더 좋다기보다는, 더 충격적이었다. 들여다봐서는 안될 심연을 본 느낌이랄까. 너무나 불경한 주장에 나는 놀랐고 무서웠고 결국에는 굴복했다.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때까지의 세계사는 바로 이것에 불과한 거야.” 키릴로프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자살을 계획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당은 더 다닐 수 없었다. 기도에서 얻었던 평화와 안식도 그걸로 끝이었다.

십몇 년 뒤 나는 자살선언문을 발표하고 연쇄자살을 감행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21세기 대한민국 버전의 <악령>을 쓴다고 생각했다. 소설 앞머리에서 저 키릴로프의 대사도 인용했다.

도스토옙스키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무신론을 비판하기 위해 <악령>을 썼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래도 <악령>에 대한 내 평가는 그대로다. 이 소설은 글자로 된 야수다. 독자를 찢어발기고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나는 <악령> 이후로 문학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12218005&code=960205#csidxf9a1bdbf97b93f7a1b307d4c47e93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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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lalaland commented Mar 19, 2018

[장강명의 내 인생의 책]②블랙 달리아| 제임스 엘로이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는 나의 장편소설 작법 교과서였고, 언젠가 이르고픈 목표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미 추천하는 글을 여러 번 쓴 적이 있어서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단히 끔찍한 범죄소설이라고만 소개해 둔다.

이 자리에서는 작가인 제임스 엘로이에 대해 써보려 한다. 1948년생인 이 미국 소설가는 살아 있는 동안에 ‘거장’ 칭호를 얻었고, 동시에 격렬한 비판도 받았다. 주제와 스타일 모두 굉장히 논쟁적이다. 좀 과장하자면, 나는 문학 독자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엘로이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로.

작가이자 평론가인 줄리언 시먼스는 엘로이를 혐오한다. 소설가 스튜어트 네빌은 엘로이의 열렬한 숭배자다. 그런데 두 사람이 그러는 이유는 사실 동일하다. 시먼스에 따르면 엘로이는 “미국은 곧 폭력”이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힘만이 유일한 덕목”이라고 주장한다(<블러디 머더>). 네빌이 보기에 엘로이는 “모두가 손톱 밑에 핏자국을 묻히고 있는” 세계를 그리며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과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싼 대가”를 증언한다(<죽이는 책>).

말하자면 엘로이의 작품들 자체가 이런 질문이다. ‘추악한 인간들의 추악한 행동을 냉정하게 묘사하는 것도 문학이 될 수 있나?’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도 없는 물음이다. <블랙 달리아>는 충격이었고, 다른 작품들도 모두 얼얼했다.

나처럼 대답한 독자는 ‘소설은 인간을 위무해야 하고,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도그마에 더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게 된다. 나는 그렇게 엘로이의 문예운동에 반강제로 합류했다. 그래서 오늘도 추악한 이야기를 궁리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22342005&code=960205#csidxac3e3ef8e0c40fcb1b730728f3180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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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내 인생의 책]③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 제임스 M 케인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를 두고 나는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한참 떠들 수 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살인을 저지르는 삼류 건달과 내연녀에게 진심으로 연민이 든다. 변호사도, 기자도, 사회학자도, 종교지도자도 버거워하는 일을 얇은 소설이 마술처럼 쉽게 해낸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얘기가 아니라, 이 작품의 문체에 대해 써볼까 한다. 나는 <포스트맨…>의 문장을 본받고 싶다.

케인은 레이먼드 챈들러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둘 다 ‘하드보일드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두 작가의 스타일은 아주 딴판이다.

챈들러는 현란한 비유를 구사하는데 케인은 극도로 간결하게, 꾸밈없이 쓴다. 서너 쪽을 짧은 대사로만 구성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 “옷을 너무 많이 껴입었네” 같은 식으로.

뉴요커 편집장 출신인 케인의 언어감각이 빈곤했던 게 아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캘리포니아로 이사 와서 ‘보통 사람의 말’을 발견하고, 그 말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포스트맨…>을 쓰면서 8만단어였던 초고를 줄이고 쳐내 3만5000단어로 압축했다. 계약서에는 ‘4만단어 이상’이라는 조건이 있었기에 출판사는 출간을 거부하려 했지만 케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챈들러는 케인을 ‘문학계의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고독하고 정의로운 탐정을 안 그런 척 로맨틱하게 그렸던 챈들러로서는, 건달이 건달처럼 말하는 소설을 참기 힘들었으리라. 나는 케인 편이다. 살면서 외롭고 의로운 탐정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보통 사람의 언어로 이룬 시적 정취의 폭발력은 그 어떤 수사법도 뛰어넘는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32339005&code=960205#csidx6e0c66f776941eeaf0aac8c0769b4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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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lalaland mylalaland reopened this Feb 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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